여수의 위기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대책의 연속이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글로벌 석유화학 공급 과잉, 공장 가동 중단, 고용 축소라는 사면초가에 빠졌지만, 정작 지역사회와 정치권 어디에서도 진짜 원인을 직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있다.

정기명 여수시장은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각종 성과와 계획을 나열했다. 선소대교 개통, 체육센터 조성, 생활 SOC 사업, 관광객 2천만 시대 준비, 여수만 르네상스, 섬 박람회 예산 확대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지금 여수가 맞닥뜨린 본질적 위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석유화학산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여수의 경제 구조가 무너지고 있음에도 정 시장의 발언 어디에도 “산업 전환의 구체적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는 지난 3년 동안 예산 부족과 경제 불황 탓에 큰 사업을 벌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정말로 듣고 싶은 말은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겠는가”다. 단기 현안에 집중했다는 말로 그동안의 전략 부재를 포장할 수는 없다.

여수의 경제가 단선적이라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수십 년 간 산단 하나에 의존해온 구조, 그것에만 집중해온 정치·행정·시민사회의 공모가 오늘날의 위기를 만들었다. “고용위기지역” 지정은 그 구조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는 공식적인 경고일것이다.

그런데도 여수지역 국회의원들과 여수시 당국은 책임을 정부에 떠넘긴다. 여수산단이 황금알을 낳던 시절,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 부의 흐름을 다변화하거나 지역의 산업적 체질을 바꾸는 데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나선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여수지역 의원들은 매일같이 “정부가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라”앵무새처럼 외치고 다닌다. 그러나 고용위기지역 지정은 근본 처방이 아니다. 긴급 수혈은 될 수 있을지언정, 병의 원인을 고치지 못한다.

실질적인 일자리 전환, 교육·훈련 인프라 확대, 에너지 기반 구조 조정, 관광 산업의 질적 혁신 등 종합적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그런 비전은 아직 아무데서도 제시를 못하고있다. 

정기명 시장은 “여수만 르네상스”를 추진하고 있고, COP33 유치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지금 여수의 산업과 생태는 ‘르네상스’라는 단어와 어울리기엔 현실이 너무 어둡다.

세계 석유화학산단의 중심이라며 자부하던 도시가, 정작 그 산업의 미래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정작 관련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섬 관광, 야간 관광, 전시 컨벤션센터 같은 사업이 과연 지금 여수가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 할 우선 과제인가?

기자는 이번 취임 3주년 기자회견을 보며, 정 시장과 여수시 행정의 인식이 여전히 위기보다 홍보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위기는 위기대로 두고, “우리는 이것도 했다”는 식의 보고는 결국 무책임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노동계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여수산단의 사내하청 구조, 최저가 낙찰제, 불투명한 입찰 시스템은 사용자의 탐욕만이 아니라, 노조와 지자체의 묵인 속에 유지되어온 구조적 병폐였기 때문일것인데 말이다.

여수산단이 붕괴되며 노동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이 시점에서, 함께 책임지는 산업 거버넌스 구조가 시급하다 할것이다.

여수는 지금 산업도시의 쇠퇴라는 전국적 선례가 될 기로에 있다. ‘전기료 감면’과 ‘고용위기지역’이라는 단기 처방은 응급조치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여수는 위기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정기명 시장과 지역 정치인들에게 묻는다. 지금 여수는 누가 책임지고 있나? 또, 이 위기를 해결할 로드맵은 어디에 있는가? 시민들은 지금 ‘책임 회피용 기자회견’이 아니라 ‘책임 있는 전환 전략’을 기다리고 있다.